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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대로 알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수박 겉핥기 “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말의 뜻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 말이 의미하는 “부지런 하라”는 교훈을 생활 속에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보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아직 내 것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말인데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라고 생각하며 무시해버리기 다반사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실행이 안되는 것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은 단순히 머릿속에 담겨있는 문자, 이론, 정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배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앎에는 책, 문자, 언어와 같은 매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에 실험이나 훈련, 경험, 또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문 용어로 암묵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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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tacit knowledge) –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지식

물리화학자이며 철학자인 폴라니(Michael Polanyi)는 책이나 이론에 의한 명시적인 지식 이외에, 개인에 체화되어 있는 암묵적인 지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암묵지라고 처음으로 말했습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앎이라는 것은 보조적인 세부 정보들을 핵심 목표로 통합하여 전체의 패턴과 의미를 인식하는 것”

“지식은 주체와 대상이 명확히 분리된 채 주체가 대상을 수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대상을 신체 내부로 통합하거나 대상을 포함할 수 있도록 신체를 확장하는 능동적인 참여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라고 했습니다.

(출처 :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지식도 있다. 암묵지 ,과학기술학 연구원 장하원)

우리는 대나무가 어떤 나무라고 알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대나무에 대하여 모르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일깨워줍니다.

 대나무가 되어 대나무를 그린 선승

어느 날 왕이 그림을 잘 그리는 선승에게 대나무를 그려달라고 요청을 했다. 선승은 대나무를 그리는 데는 적어도 2~3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왕이 말했다.

” 스님은 훌륭한 화가 이신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나요? 지금 당장이라도 그것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선승이 말했다.

”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저는 우선 대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대나무가 무엇인지를 알겠습니까?”

” 그래서 저는 대나무 숲으로 가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

” 제가 내면에서 대나무를 알지 않는 한, 저는 대나무를 그릴 수 없습니다.”

” 저는 사물의 가장 깊은 핵심에서부터 알고 있는 것만을 그립니다.”

” 이것이 제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입니다.”

왕은 대답했다.

” 좋소, 기다리겠소.”

일 년이 지나갔다.

왕은 대나무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선승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신하들을 대나무 숲으로 보냈다.

그들은 돌아와서 전했다.

” 선승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더 이상 사람같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는 바람에 대나무와 똑같이 흔들거렸습니다. 그는 대나무였습니다. ”

” 그의 곁을 지나가도 선승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 했습니다. 인사를 했지만 듣지도 못 합니다.”

”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는데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저희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직접 대나무 숲을 찾아갔다. 선승이 바람과 태양빛에 흔들리고 있었다.

왕은 선승에게 물었다.

“스님, 대나무 그림은 어떻게 되었나요?”

선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왕은 그대로 돌아왔다. 그 후 삼 년이 지났고, 선승이 궁궐에 나타났다.

” 이제 화폭과 붓, 물감을 가져오십시오, 대나무를 그릴 준비가 끝났습니다.”

신하들이 그림도구를 준비해주자.
선승은 몇 초안에 대나무를 그렸다.

선승이 그린 그림을 보자 왕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림은 결코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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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대나무는 살아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었고, 살아 있는 대나무 그 자체였다.
마치 화폭 안에서 자라난 대나무 같았다.

 ( 출처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