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 어록과 이소룡 이야기 _ 페달력 26

<< 이소룡 어록 >>

“나는 만가지 발차기를 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두려워 한다. “

“ 자신이 추구하는 삶은 바로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나는 맹목적으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거나 그들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힘과 능력이란 매일매일의 연습을 통해서만 창출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라.”

“나는 매일매일 성장하는 것이 기쁘다. 진실로 나는 어디가 한계인지 모른다. 확실히 매일 새 지평이 열리거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과거의 역경에 고마움을 표한다.”

“훈련은 목적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훈련은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다루는 것이다.”

“자기 극복이 끝났을 때가 성공의 시작이다. 싸움의 끝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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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은 자신의 철학대로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이소룡의 가족들은 이소룡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란 뜻으로 무시정(無時停)이라고 불렀다.
학교에서는 고집 세고, 거칠었고,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문제아였다.
홍콩에서 학교를 다니던 이소룡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로 영국인을 중오했고 항상 영국 학생들과 싸움을 했다.
덩치 큰 영국학생들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싸움을 할 때 마다 매번 얻어맞았지만 이소룡은 패배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경찰이 이소룡의 집을 수시로의 방문했다.
결국 이소룡은 중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어느 날 이소룡은 싸움에서 크게 패한 후 무술을 배우게 해달라고 어머니를 졸라 무술을 시작했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이소룡은 영춘권이라는 무술을 배우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무술을 가르치는 사부는 이소룡을 보고 ‘싸움에 환장한 놈’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싸움을 잘 하기 위해 무술을 시작했지만 점점 무술의 심오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소룡은 길가의 나무를 상대로 발차기를 하면서 도장을 다녔다.
식사 때에도 의자를 가지고 대련을 하면서 밥을 먹었다.
이소룡의 친구 청은 도장의 수련생들이 이소룡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들은 이소룡이 무술을 익히는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많이 낙담했습니다. 저는 이소룡이 누군가와 말하는 중에도 팔이나 다리를 가만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 저는 그 친구가 정말 쿵푸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무술을 배우면서도 길거리 싸움은 계속되었다.
이소룡의 어머니는 아들이 말썽만 피우다 결국 교도소에 갈 것 같자, 미국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1959년 봄 이소룡은 115달러를 들고 미국행 여객선을 탔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이소룡은 웨이터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웨이터일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고 손님은 물론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도 눈밖에 났다.
이 때 이소룡의 삶은 비참했다. 아무튼 이소룡은 무술 수련은 계속해서 이어갔다.
어느 날 이소룡은 시애틀에서 매년 개최하는 ‘아시아 문화의 날’ 행사에 무술 시범을 보여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행사장에서 미 공군 출신의 해비급 복싱 챔피언이 이었던 제임스 드밀과 보인 시범이 큰 싸움으로 변했다.
이소룡은 압승을 했고 이 것을 계기로 첫 제자를 얻게 되었다.
그 후 많은 제자들이 생겼고 무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보급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소룡은 자신의 재능과 가야 할 길을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이소룡은 자신이 좋아하는 무술을 일생을 통해 갈고 닦았다.
무술가로서 인정 받고 명성을 얻은 후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쿵푸의 대가가 아니다. 나는 대가 이기 이전에 학생이다. 대가로서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배우고 있다는 의미에서 학생이다.”
이소룡은 평생 동안 무술을 배우고 연마할 자신에게 ‘대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다고 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수 백 권의 무술 서적을 소장했고, 쿵푸는 물론 수 많은 복싱 매뉴얼과 영상자료들을 통해 끊임없이 분석하고 연구했다.
육체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소룡의 절친이자 제자였던 타키 키무라는
“ 이소룡은 우리에게 집이 불타버린 한 노파에 대한 일화를 자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 노파가 가장 아끼던 물건은 피아노였습니다. 피아노는 2층에 있었고, 불이 나자 이소룡은 노파의 피아노를 집 밖으로 꺼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피아노를 다시 옮기는 데 남자 넷이 필요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이소룡의 힘은 내부에 잠재해 있던 엄청난 힘에 기초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것을 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출처 : 브루스 토마스,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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